[] 시사매거진 칼럼 [김광웅의 법률산책] 바람핀 배우자도 이혼을 요구하고 재산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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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율민 작성일25-04-22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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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바람이 났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자기가 더 이상 못 살겠다며 이혼하자고 합니다. 저는 절대 이혼 못 해준다고 했는데, 혹시 법원에서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줄 수도 있나요?”이혼상담을 하다 보면,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가 오히려 먼저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에 놓인 의뢰인들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혼인 파탄의 책임이 분명한 쪽에서 이혼을 청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이혼이 받아들여질 경우 그 유책배우자에게조차 재산을 나눠줘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억울함은 더욱 커진다. 이번 칼럼에서는 바로 이 지점, 즉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실제로 가능한지, 그리고 이 경우 재산분할까지 인정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례를 통해 자세히 살펴보자.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는 A씨 부부는 결혼 12년 차로, 미성년 자녀 1명을 두고 있다. 남편은 고양시 일산과 김포시에서 식당들을 운영하며 안정적인 소득을 벌어왔고, 아내 A씨는 전업주부로서 자녀 양육과 가사노동을 전담해 왔다. 최근 A씨는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린 자녀를 고려해 상간녀를 상대로 한 상간소송만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당연히 남편이 고개를 숙이고 용서를 구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상과 달리 남편은 “이미 마음이 떠났다”며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정식으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소장에는 자녀의 양육권은 아내에게 귀속시키고 충분한 양육비도 지급하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A씨는 “부정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하고, 심지어 재산까지 나누자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먼저 A씨의 남편처럼 외도를 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가능한지 알아보자. 민법상 이혼은 당사자 간 협의에 의한 협의이혼과 법원의 판결에 따른 재판상 이혼으로 나뉜다. 이 중 재판상 이혼의 경우,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혼인파탄의 주된 책임이 있는 자는 자신의 유책사유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시해 왔다. 이는 책임 있는 자에게 혼인 해소의 이익까지 부여할 수 없다는 도의적 판단에 근거한 원칙이다. 그러나 “혼인이 사실상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파탄되었고, 상대방 역시 혼인관계를 실질적으로 회복할 의사가 없는 경우”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예외는 매우 엄격하게 적용된다. 특히 상대방이 이혼을 완강히 거부하고 혼인 유지 의사를 명확히 밝히는 경우라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사례에서 A씨가 이혼소송에서 혼인 유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다면, 남편의 이혼청구는 기각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 A씨가 실제로는 혼인을 유지할 의사가 없음에도 단지 보복이나 감정적인 이유로 이혼을 거부한다고 가정법원이 판단하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인 남편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A씨가 이혼에 동의한다면, 남편의 외도 사실이 재산분할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재산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다르다. 재산분할은 혼인 중 형성된 공동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판단되며, 유책 여부는 원칙적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즉,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혼인생활 중 경제활동을 통해 수입을 벌어들이거나,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여하였다면 재산분할권이 인정된다. 혼동해서는 안 될 점은,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전혀 다른 법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위자료는 혼인 파탄의 ‘책임’에 대한 손해배상이고, 재산분할은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다. 실제 재판에서는 외도를 한 배우자에게 상당한 액수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하면서도, 그와 별개로 재산분할 역시 일정 부분 인정하는 판결이 함께 내려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분할 대상이 되는 재산은 반드시 부부 공동명의일 필요도 없다. 부동산, 예금, 보험금, 퇴직금, 국민연금, 임차보증금채권, 채무 등은 명의와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부부가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으로 인정된다면 분할 대상이 될 수 있다.
이혼소송에서 가장 흔한 감정은 억울함이다. 분명 상대방의 잘못으로 혼인이 파탄 났는데, 법적으로는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은 감정을 정리하는 절차가 아니라, 인생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법적 과정이다. 억울함에만 기대다 보면 정작 자신의 권리를 지키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유책배우자라고 해서 모든 권리를 잃는 것도 아니고, 피해자라고 해서 모든 것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법원은 누가 혼인 중 어떤 기여를 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닌 증거다. 이혼은 끝이 아니라 출발이다. 감정에 치우쳐 중요한 결정을 그르치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법적으로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신중히 따져보아야 한다. 혼자의 판단이 어려울 때는 이혼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이혼이라는 과정이 아픔으로만 남지 않고, 앞으로를 위한 든든한 기반이 될 수 있다.
신현희 기자 bb-75@sisamagazine.co.kr
출처 : 시사매거진(https://www.sisamagazin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