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칼럼 [김광웅의 법률산책 -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당신…이혼사유는 어디까지 인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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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소율민 작성일25-05-19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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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웅의 법률산책 -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당신…이혼사유는 어디까지 인정될까]
"남편과 대화가 전혀 되지 않습니다. 각방을 쓴 지도 오래고, 아이 문제로도 다툼이 끊이지 않아요. 도저히 더는 같이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이혼사유가 되지 않나요?"
이혼소송을 준비하는 이들이 필자에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바로 “과연 내가 이혼할 수 있는 사유가 되는가?”에 대한 것이다. 특히 협의이혼이나 조정이혼이 아닌 ‘재판상 이혼’을 원할 경우, 단순히 결혼생활이 힘들다는 사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법은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이혼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그 입증책임은 원고, 즉 이혼을 청구하는 측에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가정법원이 실제로 이혼을 인정하는 사유와 그 입증에 필요한 요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민법 제840조는 재판상 이혼사유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①배우자의 부정행위,
②배우자의 악의의 유기,
③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에 의한 심히 부당한 대우,
④본인 또는 직계존속에 대한 심히 부당한 대우,
⑤3년 이상 생사불명,
⑥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이다. 이 중 가장 자주 다투어지는 사유는 단연 ①부정위와 ⑥기타 중대한 사유이다.
먼저, 부정행위는 단순한 외도 의심 수준이 아니라, 혼인 중 성적 정조 의무를 위반한 행위를 말한다. 반드시 육체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정법원은 ‘성적 접촉’ 또는 ‘배우자로서의 신의와 정조를 명백히 저버린 행동’이 입증되어야 부정행위로 판단한다. 이와 같은 입증의 정도는 상간자(상간남, 상간녀)상대로 하는 상간소송에서도 동일하다. 구체적으로는 모텔 출입기록, 성적 표현이 담긴 메시지, 사진, 동영상, 제3자의 증언 등이 활용된다. 둘째, ‘기타 중대한 사유’는 위 다섯 가지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혼인생활의 회복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를 의미한다. 법원은 단순한 성격 차이, 잦은 다툼, 대화 단절 등의 사유만으로는 혼인의 파탄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혼 청구가 기각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 경우다.
사례를 두 가지 비교해 보자.
먼저, 파주시 운정에 거주하는 A씨는 남편과의 소통 단절, 감정적 학대, 경제적 무관심 등을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두 사람은 별거 없이 같은 집에 살고 있었으나 수년 간 대화가 거의 없었고, 남편은 가정생활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A씨는 상담기록과 지인 진술서, 생활비 미지급 내역 등을 증거로 제출하였고, 남편은 이에 대해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반면 고양시 일산에 거주하는 B씨는 아내가 잦은 짜증과 무관심을 보인다는 이유로 이혼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여전히 함께 거주 중이었고 자녀 양육에도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B씨는 뚜렷한 학대, 가정폭력, 폭언, 불륜 등의 사유 없이 단지 감정적 불화만을 주장하였다.
위와 유사한 사례에서 가정법원은 A씨의 경우 혼인생활의 실질적 파탄을 인정하여 이혼을 인용한 반면, B씨의 경우에는 이를 ‘이혼이 불가피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처럼 법원은 단순한 불만이나 갈등이 아닌, 혼인의 실질적 파탄 여부를 기준으로 이혼 여부를 판단한다. 따라서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면, 단순한 주장보다는 객관적인 자료와 생활기록을 통해 혼인 파탄을 입증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이혼소송에 경험이 풍부한 이혼전문변호사와의 상담을 적극 추천한다.
한편, 유책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외도를 저지른 쪽이 혼인파탄 이후 “이제 서로 불행하니 이혼하자”고 주장하더라도, 상대방이 이를 원치 않는다면 가정법원은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장기간 별거와 갈등으로 사실상 혼인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며, 상대방 또한 이혼을 반대할 실질적 이유가 없는 경우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인용되기도 한다.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감정이 앞서고, 법은 그 뒤를 따른다. 그러나 감정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고, 재판은 감정이 아닌 증거로 판단한다. 요즘처럼 날씨가 따뜻하고 사람들의 마음이 들뜨는 계절에는 평소보다 부부 갈등이 더 도드라져 보이기 마련이다. 필자도 결혼 25년차가 되다 보니 부부싸움의 본질이 ‘정답’을 찾기보다는 ‘지금 당장 지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물론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져 돌이킬 수 없다면, 이혼도 하나의 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한 번 더 말 걸 수 있고, 한 번 더 참을 수 있다면, 그게 법정에 제출할 증거보다 먼저 챙겨야 할 진심일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배우자에게 법 대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법정은 마지막 수단일 뿐, 가정은 그보다 먼저 지켜야 할 곳이니까.
신현희 기자 bb-75@sisamagazine.co.kr
출처 : 시사매거진(https://www.sisamagazine.co.kr)